태양신 라(RA)는 유명한 디자이너 라이너 크니지아(Reiner Knizia)의 명작 경매게임입니다. 게임은 2~5명이 할 수 있다고 하지만, 3~4인으로 해야하는 게임 같습니다. 게임 시간은 한 시간 정도는 걸리더군요. 이 아저씨가 워낙에 이집트를 좋아해서인지 이 게임도 이집트의 신을 테마로 하고 있습니다만, 게임에서 별로 느껴지진 않습니다. 테마와 시스템이 잘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꽤 단점인데 불구하고, 이 아저씨 게임은 그 자체로 너무 매력적이라 단점이 신경쓰이지 않더군요.


이 포스팅의 모든 사진은 보드게임긱의 라(RA)의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



게임은 "경매" 게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난 번에 언급했던 모던아트 (Modern Art)가 이 분의 경매 게임 3부작의 1부라면, 이 게임은 마지막 3부입니다. 나머지 하나는 메디치(Medici)로 이 두 작품 중간에 나왔죠. 메디치는 아직 제가 해보지 못해서 다음 기회에...


경매 게임을 많이 해보진 못했지만, 이 태양신 라는 확실히 독특한 점이 있었습니다. 제 생각에 모던 아트와 같은 다른 경매 게임을 하다보면, 경매에 나온 물건의 "가치를 정확히 판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머릿 속으로 돈 계산을 핑핑~하면서 내가 이익을 볼 수 있는 가격을 계산하게 되죠. 모던 아트가 그나마 물건의 가치가 정량적으로 드러나는 게임이었습니다.



하지만 태양신 라는 그보다는 "타이밍"이 중요한 게임이었습니다. 위의 사진에 가운데 보이는 파란 "라(RA)" 말을 손에 들면서 "라!"를 외치면 그동안 쌓인 물건을 놓고 경매가 한 바퀴 돌아갑니다. 다들 자기가 원하는 물건이 좀 더 많이 쌓이길 기다리지만, 너무 가치가 높은 물건들이 많이 나오면 생각보다 경매에 이기기 어렵습니다. 그건 이 경매가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숫자 타일"을 가지고 하기 때문입니다. 저 나무로된 타일이 태양 타일로, 각자 이 타일을 가지고 게임을 시작합니다.


당연히 높은 숫자 타일을 가진 사람이 경매에서 유리할 것 같지만, 막상 게임을 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게임의 라운드가 언제 끝날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며, 경매 물건도 자신이 원하는 데로 나와주지 않습니다. 가장 높은 수의 태양 타일을 가진 사람은 언제든지 경매에 이길 수 있는 필승 패를 쥐고 있는 것이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는 물건이 나와야 그게 의미가 있습니다. 필승 패를 아끼면서 계속 기다리다보면 어느새 라운드가 끝나고, 다른 사람들은 작은 숫자나 중간 숫자로 적당힌 물건들을 경쟁없이 챙겨가고 나만 아무 것도 못 먹은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리고 누구도 원치 않을 때 경매가 자동으로 시작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경매로 내가 사용한 태양 타일이, 그대로 다음 경매 대상에 포함된다는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물건이 좋다고 마구 경매를 이기다보면, 다음 라운드에 내 손에 있는 태양 타일이 모두 낮은 숫자들로만 되어 있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 라운드에서 좋은 물건을 얻기는 쉽지 않겠죠. 반대로 물건을 형편없는데 올라온 태양 타일의 숫자가 매우 큰 경우, 낮는 숫자로 이를 먹으려는 시도가 가능합니다. 다음 라운드 경매에서 좋은 기회를 얻기 위해서죠.



게임은 3라운드로 이루어져있고, 매 라운드 마다 점수 계산에 사용하고 버려지는 물건이 있고, 게임 종료때까지 계속 쌓이는 물건이 있습니다. 위의 개인판에 경매에서 얻을 수 있는 물건들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각 물건들은 가치가 독특합니다.


오른쪽 위에 있는 회색인 문명은 매 라운드 1개라도 없으면 -5점이니 하나라도 챙겨야 하는 물건이죠. 3가지 아상의 종류를 모으면 큰 점수를 주기도 합니다. 녹색의 파라오는 계속 누적되면서 가장 많은 사람에게 +5점을 주고, 가장 적은 사람에게 -2점을 주는 물건으로 꾸준히 모으면 총 3라운드 동안 15점을 주는 고마운 녀석입니다. 우측 아래 나일강과 나일강이 범람하는 녀석은 개당 1점이지만 범람하는 녀석이 있을 때만 점수를 받을 수 있습니다. 꾸준히 나일강을 누적시키고 계속 범람을 챙길 수 있다면 매우 좋은 점수를 벌 수 있지만, 범람이 없다면 그냥 0점일 뿐이죠. 왼쪽 아래 8가지 기념물 들은 한 종류를 여러개 모으거나 여러 종류를 모으면 고득점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갯수가 그리 많지 않아서 생각보다 많이 모으기 쉽지 않습니다. 상대방들의 견제도 만만치 않거든요. 그리고 그냥 3점을 주는 금화가 있고, 그냥 2점을 주지만 사용할 경우 경매에 올라온 물건 한 개를 가져올 수 있는 노란색의 신이 있습니다.


길게 설명했기 때문에 글로만 읽으면 정신없지만 요약하면, 단기적인 이익을 주는 물건이 있고, 장기적인 이익을 주는 물건이 있습니다. 그리고 함께 있어야 가치가 커지는 물건이 있고, 나에겐 가치가 있지만 상대에겐 가치가 낮은 물건이 순간순간 생깁니다. 즉, 각자 점수를 어떤 것에서 먹을지 다른 방향으로 해나갈 수 있습니다.


저 위에 보이는 개인판을 가지고 게임을 하면 처음 하는 사람도 쉽게 물건들의 가치를 알 수 있습니다. 보드라이프에 프리빈님이 위와 비슷한 개인판을 한글로 만들어주신게 있어서 저는 이를 출력해서 판으로 만들어 쓰고 있습니다. 게임을 위해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이 게임은 최고의 경매 게임일 뿐 아니라, "3인"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경매 게임이 아닐까 싶습니다. 일반적으로 경매 게임은 사람이 많아야 재밌습니다. 서로 눈치를 보면서 가격 경쟁을 하는 맛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태양신 라"는 3명이 했을 때도 최고의 재미를 줍니다.


내가 "라!"를 외치자 상대방이 머리를 쥐어 뜯으며 고민할 때, 그 통쾌함이 아주 마음에 드는 게임입니다. 경매 게임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꼭 한 번은 해보라고 얘기하고 싶은 태양신 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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